내가 어릴 때 우리집 옷장에서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때 나는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만큼 어렸을 때였다
우리집은 엄마가 일을 하고
아빠가 집에서 놀았는데 당시 도박 중독이었던
아빠는 집에 나를 홀로 남겨놓고 밖에 나가
밤 늦게서야 들어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나는 그것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는데
부보님이 모두 나가고 나 혼자 남은 날은
항상 옷장문을 열어놓고 남자와 놀았다
남자는 입도 없고 코도 없고 눈도 없었지만
나는 그 남자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어느날 여느때처럼 혼자 집을 보던 나는
남자와 놀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차가운 기척에 눈을 뜨자, 항상 옷장에 있던
남자가 어쩐일인지 옷장에 나와서는 나를
나를 내려다보며 손을 내밀었고
나는 남자가 내미는 손을 잡고
집밖으로 나갔는데 내가 대문앞에 도착하자
남자는 나를 문 밖으로 밀어냈고
내가 잡을 사이도 없이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 날 우리집은 아빠가 미쳐 끄고 나가지 않았던
가스불 때문에 크게 화재가 났고
대문밖에 서있던 나는
운좋게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 뒤로는 남자를 보지 못했다
남자가 있던 옷장이
그날의 화재로 쌔까만 잿더미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훗날 엄마에게 이 얘기를 했는데
엄마는 그저 그때 우리가 쓰던 옷장이
원래 우리게 아니었다는 말만 해주었을 뿐이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남자는 정말 누구일까, 왜 그 옷장에 있었을까
왜 나와 놀아주고 나를 구해주었을까
지금은 20살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나는 가끔씩 그 남자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