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 인생에서
가장 슬프고 기쁜 날이 되겠네요
저희 집에서는 아빠와 엄마가
싸우는 모습이 자주 보였고
저는 저보다 한살 어린 동생의 귀를 막으며
방에서 숨죽이고 있는거 밖에 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밤 큰소리에 깨서 거실에 나가보니
엄마가 입에서 피를 잔뜩 흘리고 있고
작은 삼촌이 아빠를 두들겨 패고 있었어요
알고 봤더니 아빠가 엄마를 때렸고
엄마가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작은 삼촌을 부르신거였어요
그 날 이후 엄마는 집을 나가셨어요
저는 원래도 엄마 껌딱지에
눈물이 많은 아이였는데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고
정말 많이 울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제가 울때마다 아빠와 할머니는
저 우는 소리가 듣기 싫다며
다시는 엄마를 만날 수 없게
멀리 갖다 버린다고 하셨어요.
제가 할수 있는건
역시 동생의 손을 움켜잡고
눈물을 꾸역꾸역 삼키는 것 뿐이었어요.
그렇게 초등학교에 들어갔을때
엄마가 몰래 찾아오신적이 있어요.
엄마가 햄버거를 사주면서
저한테 미안하다고,
꼭 다시 데리러 올테니
아빠 말 잘듣고 있으라고 하셨어요.
저는 가지말라고
나도 데려가라고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엉엉 울었고 엄마는 저보다 더 많이 우셨어요.
엄마는 자기랑 만난걸 비밀로 해야
또 만날 수 있다고 하셨고
저는 그 약속을 지킬 수 밖에 없었어요.
집 근처에서 제 손을 한참
만지작 거리던 엄마의 손을,
다시 잡을 수 없었던건
엄마가 집에 돌아오면
또 아빠한테 맞을까봐 그게 무서웠어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가 맞을까봐 어린 저에겐
그게 가장 큰 슬픔이고 공포였거든요.
그렇게 엄마는 아주 가끔,
학교로 찾아와서 햄버거를 사주셨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할머니한테 엄마랑 만난걸 들켜서
뺨을 수차례 맞고
엄마도 죽이겠다고 난리 치는 통에
저는 다시는 엄마를 만나지 않겠다고 빌었어요.
그 후로는 할머니가
학교에 데리러 오시는 바람에
엄마를 한참 만날 수 없었어요.
3년 이상은 못만났던걸로 기억해요.
그러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때
엄마가 다시 한번
저를 찾아오신적이 있어요.
괜시리 엄마가 미워서 틱틱 거렸고
이제 엄마 안와도 된다고,
나 이제 다 컸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어요.
엄마는 일이 있어 급하게 가봐야한다며,
다음 주 주말에 옆동네
공원에서 꼭 만나자고 하셨어요.
엄마가 그날 영화관에 데려가준다고 하셨어요.
저는 삐져서 제대로 대답은 안했지만
속으로는 정말 좋았어요.
저는 아빠한테 다
음 주 친구 생일파티에 간다고 거짓말 했고
그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기다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죠.
근데 하필 그날 아침부터 날씨가 흐렸고,
할머니는 곧 비가 올거 같으니
친구 생일파티에 가지 말라고 하셨어요.
저는 계속 꼭 가야한다고 졸랐고
할머니는 친구이름과 전화번호를 대라고
윽박 질렀고 제가 대답을 못하자
할머니는 수상하다며
방 밖으로 못나오게 감시하셨어요.
그렇게 비가 왔고
저는 엄마가 빗속에서 저를 기다릴까봐
가슴이 타들어가는거 같았어요.
할머니가 점심 먹고 잠들었을때
이미 약속시간은 한참 지났었지만
우산도 대충 들고 빗속을 달렸어요.
중간에 넘어져서 무릎이 다 까지고
우산이 거추장스러워서
우산을 접고 들고 달려갔지만
공원엔 아무도 없었어요.
비인지 눈물인지
혹은 둘다인지 눈을 뜰 수 없을만큼
얼굴은 젖었는데
그 와중에도 엄마가 비를 맞았을까봐
그게 너무 걱정되서
공원에서 한참을 앉아있었던거 같아요.
그 날 할머니한테 엄청 혼나고
그 다음날 아침에 열이 올라서
응급실에 가고 정신없는 하루였는데
그런데도 계속 엄마 생각이 났어요.
동생 손을 잡고 누나가 욕심 부려서 미안하다고,
누나 혼자 엄마 만나러 가려고 해서
벌 받았나보다 했어요.
동생은 자기도 엄마가 보고싶었을텐데
착하게도 저를 안아주며 위로해줬죠.
괜찮다고. 누나 아프지말라고.
그 후로 엄마를 완전히 만날 수 없었어요.
아빠의 일 때문에 먼 곳으로 이사를 했거든요.
그 후로 의지할 곳이라곤 동생,
그리고 내 자신 그거 뿐이라
이 악물고 살았어요.
친구들의 어머니를 보며,
지나가는 모녀를 보며
미치도록 먹먹한 기분이 들었어도
그래도 살아왔어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죠?
시간이 지나면 엄마에 대한
그리움도 흐려질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던거 같아요.
살기 위해 먼 곳에 묻어두고 외면했을 뿐,
사실은 단 한순간도
엄마를 잊어본적 없다는걸
지금에 와서야 깨달았어요.
이제 그때의 어린 저는 없고,
어느새 어른이 되었네요.
몇달 전에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온적 있어요.
전화를 받았는데 아무소리도 안들려서
장난전화인가보다 하고 끊었는데
그 후로 한번 더 전화가 왔어요.
역시나 상대는 아무 말이 없었는데
뭔가 찜찜해서 전화번호 저장을 했거든요.
그리고 카톡을 봤는데
이름은 이모티콘으로 되어 있어
모르겠고 프사에는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있었어요.
아, 아이엄마폰인데
아이가 가지고 놀다가 잘못 걸었나보다 했죠.
그렇게 또 잊고 있었는데
저장해두고 지우는걸 깜빡한
그 번호로 또 전화가 왔어요.
그때 사진 속 아이가
왜 내번호에 장난전화를 걸까 싶어서
전화를 받았더니
ㅇㅇ아
내 이름 딱 한마디를 부르는데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어요.
제가 평생을 그리워한 사람인걸
단박에 알 수 있었지만
회사에서 받은 전화였고,
이미 그 떨리는 목소리에
눈물이 터질거 같아 서둘러 끊어버렸어요.
일에 집중도 안되고
안절부절 못하고 화장실만
여러번 왔다갔다 하다
몸이 너무 안좋다고 죄송한데
반차 쓰겠다고 말하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어요.
감사하게도 사장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집에 보내주셨죠.
집에 가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어요.
제 이름을 부르는 엄마 목소리에
대답도 못하고 한참을 울었어요.
잘 지냈냐고, 미안해서 전화 못했다고,
엄마 많이 미웠지 않냐며
엄마도 울면서 물어보시는데
제가 궁금한건 딱 하나였어요.
그 날, 우리가 옆동네 공원에서 만나기로 한 날
비 맞았냐고
나 기다렸냐고
엄마는 빗속에서 저를 두시간이나 기다렸다고
비가 와서 제가 못 나오는걸 알면서도
추운줄도 모르고 저를 기다렸다고
그 날 정말 보고싶었다고 했어요.
나도 보고싶었다고
그 날 나도 뒤늦게 빗속을 달려가서
엄마를 찾았다고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그럼 엄마가 더 울까봐 말 안했어요
못했어요
그렇게 15년만에 엄마를 다시 만났어요.
어린 저는 어른이 될 만큼 긴 세월이었는데
분명 엄마도 예전보다 늙었는데
그 간극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듯 한 기분이었어요.
제 동생
저보다 한살 어리지만 울보인
저 때문에 정말 잘 안울었거든요
아주 어릴때부터 동생은
저 때문에 눈물을 참아왔을거에요
근데 동생이 그렇게 우는게
대체 몇년만인지 카페에서 한참 손만 잡고
울다가 조금 진정이 됐을때
서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묻고 들을 수 있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생각난 엄마의 프사,
어린 여자아이가 생각나 조심스레 여쭤봤더니
엄마가 낳은 아이라고 하셨어요.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왔지만
그래도 충격이었어요.
하지만 또 엄마가 걱정할까봐
바보같이 웃으며 엄마를 닮아서
눈이 예쁘다는 시덥잖은 소리만 했어요.
엄마는 그분을 불러서
같이 얘기해도 되냐고 하셨고
동생이 그분을 보고싶어해서 저도 허락했어요.
왠지 엄마랑 닮은 분이셨어요.
수더분한 인상, 어색하게 웃는 얼굴,
그리고 저랑 동생에게 정말 보고싶었다고
말씀 하시는데 거짓이 없어보여서
씁쓸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어요.
엄마는 집 나오고 이혼 한 뒤
작은 식당에서 일 하며 사셨는데
그때 손님으로 오시던 분이래요.
그분은, 엄마를 5년이나 기다렸다고 하셨어요.
엄마가 빗속에서 저를 기다린것도 알고
저희가 하루아침에 이사 가버려서
엄마가 우리 흔적 찾겠다고
뛰어다니신것도 다 알고 계셨어요.
그러다 엄마가 삶을 포기하려고 할때
그분이 곁에서 함께 있어주셨대요.
엄마는 저희 생각에 결혼은
절대 하지 않을거라고 하셨고
두분이 연애만 하며 그렇게 살다가
그 아이를 임신하게 되셨나봐요.
엄마는 얘기를 하며 계속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너희를 두고 가놓고 아이 낳고 살았으니
얼마나 원망스럽겠냐며
엄마를 미워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동생이, 그 아이 이름을 묻고는
이름이 예쁘다며 분명 이름처럼
예쁜 아이로 클거라고,
우리는 이제 괜찮다고 하며
제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어쩌면 저는 엄마를 조금 원망하는 말을
뱉았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말을 한 제 자신을
원망하며 살았겠죠.
그래서 저도 엄마가 행복하면
우리도 행복하다고 했어요.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엄마 프로필 사진에 활짝 웃고 있던
그 아이가 저처럼 슬픈 어린시절을
보낼지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정말 두분이 부부가 되서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했고
그분은 눈물까지 흘리며 정말 고마워하셨어요.
엄마를 평생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혹시라도 엄마를 울리면
찾아와서 자신을 혼내도 된다고 하셨어요.
엄마가 그분 옆에서 조금은 편해보여서
그 아이가 엄마의 눈을 닮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거 같아요.
카페에서 나와 넷이서 밥을 먹고
호텔 잡아서 엄마랑 동생이랑
셋이서 하룻밤 같이 잤어요.
별다른 얘기는 나누지 않았지만
같이 잔 그 하루가
제 마음을 다 정리해준 거 같다고 해야할까요.
엄마랑 헤어지고,
또 만나자고 얘기하며
엄마 손을 다시 놓아야 하는 그 순간에
또 한번 무너질거 같은 기분이었지만
뒤에서 제 어깨를 잡아준
동생의 온기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생이
저에게 했던 말이,
“누나 우리도 진짜 행복해지자.”
또 눈물이 날거 같아 고개만 끄덕였지만
동생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했어요.
그리고 오늘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엄마가 없었는데도
잘 커줘서 고맙다고, 그
리고 그분과 혼인신고하고
결혼식 대신에 엄마 고향에 함께 가서 사
진 찍었다며 사진을 보내오셨는데
엄마의 웃는 얼굴이 좋아보여서 다행이다 했어요.
늘 과거에 발목 잡혀서
어린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정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엄마 꼭 행복하세요.
그리고 봄을 닮은 아이야,
이젠 니가 엄마의 기쁨이 되어주렴.
사랑하는 내동생,
나 앞으론 안 울고 누나답게 그렇게 살게.
익명의 글에 제 마음과 슬픔을 털어내고 갑니다.
나 힘내자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친구가 혹시 제가 쓴 글이냐고 해서 봤더니
댓글이 엄청 나네요.
무언가 위로를 바라고 쓴 글이 아니라
슬픔을 토해내기 위해 작성한 글인데
이렇게 위로를 받을 줄이야.
너무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다시 읽어보니 보니 너무 부끄럽네요.
어른인 척,
엄마만을 위하는 척 썼지만 사실은 아니에요.
살면서 엄마를 미워한 적이
한번도 없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미워하다가도 결국엔
엄마를 미워하는 자신을 탓하며
엄마와 관련된 감정 모두를
마음 깊숙이 묻어두곤 했어요.
글에 썼던 것 처럼,
엄마가 입에서 피를 흘리던 모습이
저한테는 너무 생생했거든요.
엄마가 넘어져서 다친거라고,
별로 다친거 아니라며
저에게 더 자라며 방에 밀어넣어주셨는데
그때 바닥에 누워있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두들겨 패는
작은 삼촌의 모습까지 너무 생생하네요.
일주일 전에 뭐 먹었는지는
생각이 안나는데
아주 옛날 아픈 기억들은
왜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해지는지 모르겠어요.
옆동네 공원 사건도 그래요.
저는 아직도 그때 공원의 생김새를
온전히 기억해요.
난간이 부서진 작은 정자에서
내리는 비를 보며 엄마를 기다렸던
그 기억이, 그때의 내 감정이
하나도 지워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있어요.
시간이 좀 지나서는,
엄마가 그때 공원에 오긴 왔을까?
빗속에서 날 애타게 기다렸을까?
엄마가 비를 맞으며
나를 기다렸어도 슬프고
애초에 오지 않았다고 해도 슬펐거든요.
그래서 언젠가 엄마를 만나면
꼭 물어봐야지, 했어요.
전화로 저를 기다렸다는
대답을 들었을때 사실은요.
기쁜 마음이 더 컸던거 같아요.
날이 흐려서, 너 안나올거 같아서 엄마도 안갔어.
라고 하셨으면 많이 슬펐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 햄버거도 못 먹어요.
햄버거 다 먹으면 엄마랑 헤어져야하니까,
꼭꼭 씹어서 오래오래 먹었어요.
그래서 엄마랑 헤어지고 나서도
입에 햄버거 맛이 오래오래 남아 있어서,
햄버거 가게만 봐도 엄마가 떠올라서
반장네 어머니가 돌린 햄버거도
배아픈 척 하고 가방에 넣고는
집에와서 버렸어요.
그리고 엄마를 만나러 가면서
동생이랑 얘기했거든요.
프사 속 아이가 엄마 아이인거 같다고,
동생이 아무말이 없길래
고작 한살 많은 주제에
또 어른인 척 하고 싶어서
엄마도 행복해야지.
결혼 하셨을거라고 예상 했었어.
나름 담담하게 뱉으려 했지만
제가 생각해도 제 목소리가 너무 떨렸거든요.
그래서인지 동생은 저한테 웃어주며
응. 이따 엄마 만나서도 꼭 그렇게 말해주자.
했어요.
동생은 제가 슬프다는걸 눈치 챘을거에요.
그래서 제가 사진을 보여줘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했겠죠.
동생이 제 마음을 눈치챘듯이
저도 동생 마음을 잘 알아서
그래서 저는 그 아이를 미워하지 못했어요.
아니 처음부터 미워할 수 없었다는 게 맞겠죠.
제가, 엄마가 낳은 아이를
미워할 수 있을리가 없으니까요.
하나도 쉽지 않았어요. 지금도 그래요.
그렇지만,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진심이어서
그래서 괜찮아질 수 있게 노력하려고 해요.
엄마를 다시 만나서,
내가 없는 엄마의 시간을 들을 수 있어서,
이제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면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서
엄마의 결혼 소식에 그래도 웃을 수 있었어요.
자신의 일 처럼 공감해주셔서,
앞길을 응원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아픔을 가지신 분들께
저도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여러분도 저처럼 슬픈 과거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엄마한테, 동생한테,
그리고 제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게요.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생에서
가장 슬프고 기쁜 날이 되겠네요
저희 집에서는 아빠와 엄마가
싸우는 모습이 자주 보였고
저는 저보다 한살 어린 동생의 귀를 막으며
방에서 숨죽이고 있는거 밖에 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밤 큰소리에 깨서 거실에 나가보니
엄마가 입에서 피를 잔뜩 흘리고 있고
작은 삼촌이 아빠를 두들겨 패고 있었어요
알고 봤더니 아빠가 엄마를 때렸고
엄마가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작은 삼촌을 부르신거였어요
그 날 이후 엄마는 집을 나가셨어요
저는 원래도 엄마 껌딱지에
눈물이 많은 아이였는데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고
정말 많이 울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제가 울때마다 아빠와 할머니는
저 우는 소리가 듣기 싫다며
다시는 엄마를 만날 수 없게
멀리 갖다 버린다고 하셨어요.
제가 할수 있는건
역시 동생의 손을 움켜잡고
눈물을 꾸역꾸역 삼키는 것 뿐이었어요.
그렇게 초등학교에 들어갔을때
엄마가 몰래 찾아오신적이 있어요.
엄마가 햄버거를 사주면서
저한테 미안하다고,
꼭 다시 데리러 올테니
아빠 말 잘듣고 있으라고 하셨어요.
저는 가지말라고
나도 데려가라고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엉엉 울었고 엄마는 저보다 더 많이 우셨어요.
엄마는 자기랑 만난걸 비밀로 해야
또 만날 수 있다고 하셨고
저는 그 약속을 지킬 수 밖에 없었어요.
집 근처에서 제 손을 한참
만지작 거리던 엄마의 손을,
다시 잡을 수 없었던건
엄마가 집에 돌아오면
또 아빠한테 맞을까봐 그게 무서웠어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가 맞을까봐 어린 저에겐
그게 가장 큰 슬픔이고 공포였거든요.
그렇게 엄마는 아주 가끔,
학교로 찾아와서 햄버거를 사주셨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할머니한테 엄마랑 만난걸 들켜서
뺨을 수차례 맞고
엄마도 죽이겠다고 난리 치는 통에
저는 다시는 엄마를 만나지 않겠다고 빌었어요.
그 후로는 할머니가
학교에 데리러 오시는 바람에
엄마를 한참 만날 수 없었어요.
3년 이상은 못만났던걸로 기억해요.
그러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때
엄마가 다시 한번
저를 찾아오신적이 있어요.
괜시리 엄마가 미워서 틱틱 거렸고
이제 엄마 안와도 된다고,
나 이제 다 컸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어요.
엄마는 일이 있어 급하게 가봐야한다며,
다음 주 주말에 옆동네
공원에서 꼭 만나자고 하셨어요.
엄마가 그날 영화관에 데려가준다고 하셨어요.
저는 삐져서 제대로 대답은 안했지만
속으로는 정말 좋았어요.
저는 아빠한테 다
음 주 친구 생일파티에 간다고 거짓말 했고
그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기다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죠.
근데 하필 그날 아침부터 날씨가 흐렸고,
할머니는 곧 비가 올거 같으니
친구 생일파티에 가지 말라고 하셨어요.
저는 계속 꼭 가야한다고 졸랐고
할머니는 친구이름과 전화번호를 대라고
윽박 질렀고 제가 대답을 못하자
할머니는 수상하다며
방 밖으로 못나오게 감시하셨어요.
그렇게 비가 왔고
저는 엄마가 빗속에서 저를 기다릴까봐
가슴이 타들어가는거 같았어요.
할머니가 점심 먹고 잠들었을때
이미 약속시간은 한참 지났었지만
우산도 대충 들고 빗속을 달렸어요.
중간에 넘어져서 무릎이 다 까지고
우산이 거추장스러워서
우산을 접고 들고 달려갔지만
공원엔 아무도 없었어요.
비인지 눈물인지
혹은 둘다인지 눈을 뜰 수 없을만큼
얼굴은 젖었는데
그 와중에도 엄마가 비를 맞았을까봐
그게 너무 걱정되서
공원에서 한참을 앉아있었던거 같아요.
그 날 할머니한테 엄청 혼나고
그 다음날 아침에 열이 올라서
응급실에 가고 정신없는 하루였는데
그런데도 계속 엄마 생각이 났어요.
동생 손을 잡고 누나가 욕심 부려서 미안하다고,
누나 혼자 엄마 만나러 가려고 해서
벌 받았나보다 했어요.
동생은 자기도 엄마가 보고싶었을텐데
착하게도 저를 안아주며 위로해줬죠.
괜찮다고. 누나 아프지말라고.
그 후로 엄마를 완전히 만날 수 없었어요.
아빠의 일 때문에 먼 곳으로 이사를 했거든요.
그 후로 의지할 곳이라곤 동생,
그리고 내 자신 그거 뿐이라
이 악물고 살았어요.
친구들의 어머니를 보며,
지나가는 모녀를 보며
미치도록 먹먹한 기분이 들었어도
그래도 살아왔어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죠?
시간이 지나면 엄마에 대한
그리움도 흐려질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던거 같아요.
살기 위해 먼 곳에 묻어두고 외면했을 뿐,
사실은 단 한순간도
엄마를 잊어본적 없다는걸
지금에 와서야 깨달았어요.
이제 그때의 어린 저는 없고,
어느새 어른이 되었네요.
몇달 전에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온적 있어요.
전화를 받았는데 아무소리도 안들려서
장난전화인가보다 하고 끊었는데
그 후로 한번 더 전화가 왔어요.
역시나 상대는 아무 말이 없었는데
뭔가 찜찜해서 전화번호 저장을 했거든요.
그리고 카톡을 봤는데
이름은 이모티콘으로 되어 있어
모르겠고 프사에는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있었어요.
아, 아이엄마폰인데
아이가 가지고 놀다가 잘못 걸었나보다 했죠.
그렇게 또 잊고 있었는데
저장해두고 지우는걸 깜빡한
그 번호로 또 전화가 왔어요.
그때 사진 속 아이가
왜 내번호에 장난전화를 걸까 싶어서
전화를 받았더니
ㅇㅇ아
내 이름 딱 한마디를 부르는데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어요.
제가 평생을 그리워한 사람인걸
단박에 알 수 있었지만
회사에서 받은 전화였고,
이미 그 떨리는 목소리에
눈물이 터질거 같아 서둘러 끊어버렸어요.
일에 집중도 안되고
안절부절 못하고 화장실만
여러번 왔다갔다 하다
몸이 너무 안좋다고 죄송한데
반차 쓰겠다고 말하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어요.
감사하게도 사장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집에 보내주셨죠.
집에 가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어요.
제 이름을 부르는 엄마 목소리에
대답도 못하고 한참을 울었어요.
잘 지냈냐고, 미안해서 전화 못했다고,
엄마 많이 미웠지 않냐며
엄마도 울면서 물어보시는데
제가 궁금한건 딱 하나였어요.
그 날, 우리가 옆동네 공원에서 만나기로 한 날
비 맞았냐고
나 기다렸냐고
엄마는 빗속에서 저를 두시간이나 기다렸다고
비가 와서 제가 못 나오는걸 알면서도
추운줄도 모르고 저를 기다렸다고
그 날 정말 보고싶었다고 했어요.
나도 보고싶었다고
그 날 나도 뒤늦게 빗속을 달려가서
엄마를 찾았다고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그럼 엄마가 더 울까봐 말 안했어요
못했어요
그렇게 15년만에 엄마를 다시 만났어요.
어린 저는 어른이 될 만큼 긴 세월이었는데
분명 엄마도 예전보다 늙었는데
그 간극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듯 한 기분이었어요.
제 동생
저보다 한살 어리지만 울보인
저 때문에 정말 잘 안울었거든요
아주 어릴때부터 동생은
저 때문에 눈물을 참아왔을거에요
근데 동생이 그렇게 우는게
대체 몇년만인지 카페에서 한참 손만 잡고
울다가 조금 진정이 됐을때
서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묻고 들을 수 있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생각난 엄마의 프사,
어린 여자아이가 생각나 조심스레 여쭤봤더니
엄마가 낳은 아이라고 하셨어요.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왔지만
그래도 충격이었어요.
하지만 또 엄마가 걱정할까봐
바보같이 웃으며 엄마를 닮아서
눈이 예쁘다는 시덥잖은 소리만 했어요.
엄마는 그분을 불러서
같이 얘기해도 되냐고 하셨고
동생이 그분을 보고싶어해서 저도 허락했어요.
왠지 엄마랑 닮은 분이셨어요.
수더분한 인상, 어색하게 웃는 얼굴,
그리고 저랑 동생에게 정말 보고싶었다고
말씀 하시는데 거짓이 없어보여서
씁쓸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어요.
엄마는 집 나오고 이혼 한 뒤
작은 식당에서 일 하며 사셨는데
그때 손님으로 오시던 분이래요.
그분은, 엄마를 5년이나 기다렸다고 하셨어요.
엄마가 빗속에서 저를 기다린것도 알고
저희가 하루아침에 이사 가버려서
엄마가 우리 흔적 찾겠다고
뛰어다니신것도 다 알고 계셨어요.
그러다 엄마가 삶을 포기하려고 할때
그분이 곁에서 함께 있어주셨대요.
엄마는 저희 생각에 결혼은
절대 하지 않을거라고 하셨고
두분이 연애만 하며 그렇게 살다가
그 아이를 임신하게 되셨나봐요.
엄마는 얘기를 하며 계속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너희를 두고 가놓고 아이 낳고 살았으니
얼마나 원망스럽겠냐며
엄마를 미워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동생이, 그 아이 이름을 묻고는
이름이 예쁘다며 분명 이름처럼
예쁜 아이로 클거라고,
우리는 이제 괜찮다고 하며
제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어쩌면 저는 엄마를 조금 원망하는 말을
뱉았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말을 한 제 자신을
원망하며 살았겠죠.
그래서 저도 엄마가 행복하면
우리도 행복하다고 했어요.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엄마 프로필 사진에 활짝 웃고 있던
그 아이가 저처럼 슬픈 어린시절을
보낼지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정말 두분이 부부가 되서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했고
그분은 눈물까지 흘리며 정말 고마워하셨어요.
엄마를 평생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혹시라도 엄마를 울리면
찾아와서 자신을 혼내도 된다고 하셨어요.
엄마가 그분 옆에서 조금은 편해보여서
그 아이가 엄마의 눈을 닮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거 같아요.
카페에서 나와 넷이서 밥을 먹고
호텔 잡아서 엄마랑 동생이랑
셋이서 하룻밤 같이 잤어요.
별다른 얘기는 나누지 않았지만
같이 잔 그 하루가
제 마음을 다 정리해준 거 같다고 해야할까요.
엄마랑 헤어지고,
또 만나자고 얘기하며
엄마 손을 다시 놓아야 하는 그 순간에
또 한번 무너질거 같은 기분이었지만
뒤에서 제 어깨를 잡아준
동생의 온기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생이
저에게 했던 말이,
“누나 우리도 진짜 행복해지자.”
또 눈물이 날거 같아 고개만 끄덕였지만
동생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했어요.
그리고 오늘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엄마가 없었는데도
잘 커줘서 고맙다고, 그
리고 그분과 혼인신고하고
결혼식 대신에 엄마 고향에 함께 가서 사
진 찍었다며 사진을 보내오셨는데
엄마의 웃는 얼굴이 좋아보여서 다행이다 했어요.
늘 과거에 발목 잡혀서
어린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정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엄마 꼭 행복하세요.
그리고 봄을 닮은 아이야,
이젠 니가 엄마의 기쁨이 되어주렴.
사랑하는 내동생,
나 앞으론 안 울고 누나답게 그렇게 살게.
익명의 글에 제 마음과 슬픔을 털어내고 갑니다.
나 힘내자

추가
친구가 혹시 제가 쓴 글이냐고 해서 봤더니
댓글이 엄청 나네요.
무언가 위로를 바라고 쓴 글이 아니라
슬픔을 토해내기 위해 작성한 글인데
이렇게 위로를 받을 줄이야.
너무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다시 읽어보니 보니 너무 부끄럽네요.
어른인 척,
엄마만을 위하는 척 썼지만 사실은 아니에요.
살면서 엄마를 미워한 적이
한번도 없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미워하다가도 결국엔
엄마를 미워하는 자신을 탓하며
엄마와 관련된 감정 모두를
마음 깊숙이 묻어두곤 했어요.
글에 썼던 것 처럼,
엄마가 입에서 피를 흘리던 모습이
저한테는 너무 생생했거든요.
엄마가 넘어져서 다친거라고,
별로 다친거 아니라며
저에게 더 자라며 방에 밀어넣어주셨는데
그때 바닥에 누워있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두들겨 패는
작은 삼촌의 모습까지 너무 생생하네요.
일주일 전에 뭐 먹었는지는
생각이 안나는데
아주 옛날 아픈 기억들은
왜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해지는지 모르겠어요.
옆동네 공원 사건도 그래요.
저는 아직도 그때 공원의 생김새를
온전히 기억해요.
난간이 부서진 작은 정자에서
내리는 비를 보며 엄마를 기다렸던
그 기억이, 그때의 내 감정이
하나도 지워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있어요.
시간이 좀 지나서는,
엄마가 그때 공원에 오긴 왔을까?
빗속에서 날 애타게 기다렸을까?
엄마가 비를 맞으며
나를 기다렸어도 슬프고
애초에 오지 않았다고 해도 슬펐거든요.
그래서 언젠가 엄마를 만나면
꼭 물어봐야지, 했어요.
전화로 저를 기다렸다는
대답을 들었을때 사실은요.
기쁜 마음이 더 컸던거 같아요.
날이 흐려서, 너 안나올거 같아서 엄마도 안갔어.
라고 하셨으면 많이 슬펐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 햄버거도 못 먹어요.
햄버거 다 먹으면 엄마랑 헤어져야하니까,
꼭꼭 씹어서 오래오래 먹었어요.
그래서 엄마랑 헤어지고 나서도
입에 햄버거 맛이 오래오래 남아 있어서,
햄버거 가게만 봐도 엄마가 떠올라서
반장네 어머니가 돌린 햄버거도
배아픈 척 하고 가방에 넣고는
집에와서 버렸어요.
그리고 엄마를 만나러 가면서
동생이랑 얘기했거든요.
프사 속 아이가 엄마 아이인거 같다고,
동생이 아무말이 없길래
고작 한살 많은 주제에
또 어른인 척 하고 싶어서
엄마도 행복해야지.
결혼 하셨을거라고 예상 했었어.
나름 담담하게 뱉으려 했지만
제가 생각해도 제 목소리가 너무 떨렸거든요.
그래서인지 동생은 저한테 웃어주며
응. 이따 엄마 만나서도 꼭 그렇게 말해주자.
했어요.
동생은 제가 슬프다는걸 눈치 챘을거에요.
그래서 제가 사진을 보여줘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했겠죠.
동생이 제 마음을 눈치챘듯이
저도 동생 마음을 잘 알아서
그래서 저는 그 아이를 미워하지 못했어요.
아니 처음부터 미워할 수 없었다는 게 맞겠죠.
제가, 엄마가 낳은 아이를
미워할 수 있을리가 없으니까요.
하나도 쉽지 않았어요. 지금도 그래요.
그렇지만,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진심이어서
그래서 괜찮아질 수 있게 노력하려고 해요.
엄마를 다시 만나서,
내가 없는 엄마의 시간을 들을 수 있어서,
이제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면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서
엄마의 결혼 소식에 그래도 웃을 수 있었어요.
자신의 일 처럼 공감해주셔서,
앞길을 응원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아픔을 가지신 분들께
저도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여러분도 저처럼 슬픈 과거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엄마한테, 동생한테,
그리고 제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게요.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정말 감사했습니다.